[Doctor"s Essay]
무모한 사후 관리, 그리고 암담한 현실!!
피부과 전문의 박석범
하루에도 수십번 씩 나는 환자들에게 주문을 외우듯 이렇게 말한다... "약 잘먹고, 연고 열심히 바르세요.. 아~ 자외선 차단제도 잊지 마시고...."
그...러....나... 정작 피부과 의사인 나는 그 주문을 지키지 못했음을 오늘에야 고백한다.. 평생 아버지의 간호와 진료를 받으라는 운명인지... 우리집 큰애는 선천적으로 아토피가 조금 있다.. 아니 좀 심하게 있다... 어쩌다 큰 애와 같이 잠이라도 잘라치면 벅벅 여기 저기 긁어대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심하다.. 물론 집에 연고나 약은 넘치듯 널려있지만 뚜껑 열고 한두번 발라준후 휙~ 집어 던진 것이 대부분이라 나중에 외양만으로는 "이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한참 뚜껑을 뒤집어 보며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집사람한테 발라주라고 하고 집사람은 명색이 아빠가 피부과 의사인데... 아빠가 발라주는 것이 더 낫지... 하는 마음에 나한테 미루기 일쑤다.. 환자들이야 어쩔수 없다지만... 집에서까지 직업 의식을 살려야 하나... 피부과 의사는 너무 피곤해~ 아흐!!
지난 봄 몇해를 벼르고 별러 온식구가 태국 여행을 나섰다.. 오랜만에 이국 구경을 한다는 설레임에 가기 일주일전쯤 피부 관리겸 환자 고통을 직접 경험한다는 거국적인 의도에서 난 내 얼굴에 해초 박피를 감행했다. 해초 박피를 받고 난 직후, 내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 "Oh, my god~ 넘 아파~" 각질은 왜 그리 많이 일어나는지... 아무튼 해초 박피 시술을 받은후 나는 하지 말라는 것은 다 했다.. 술 마시고, 목욕탕에서 땀찔찔 내며 사우나 하고, 각질 억지로 벗겨내고, 빼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자외선 차단제 안바르고... 사후 관리 안받고... 그리고 용감하게 태국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오호 통재라....역시나... 그렇게 버려둔 나의 피부... 말로 하기엔 부족하리 만큼 참담하고 암담한 결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거무 티티하고 얼룩 덜룩한 얼굴색....천만다행으로 회복이 빠른 피부라... 정상 컨디션을 찾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병원에서 의사가 지키라고 일러주는 주의사항들... 그것들은 반드시 지킬 필요가 있다... 환자들에게 내 입으로 주문하고 지키지 못한 환자들에게 내입으로 야단쳤던 지난 시간들... 나는 태국 여행을 통해 환자들이 왜 그렇게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는지 순간의 부주의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낳는지 몸소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몸으로 체득한 체험은 진실에 바탕을 두기에 훨씬 더 큰 파워를 발휘한다.. 본인의 임상 실험의 결과를 갖고 다시 진료실 앞에 앉은 나는 오늘도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에게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주문한다..
"약 잘먹고 연고 열심히 바르고... 아~ 자외선 차단제 꼭 바르세요....." 그리고 덧붙이는 말 한마디... "안 그러면 나처럼 됩니다.. 거무 티티, 얼룩 덜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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